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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VIEW
프로테스탄트 최초의 조직신학이자, 루터가 성경 다음으로 가장 아꼈던 책, (원제: Loci)
프로테스탄트 최초의 조직신학이자, 루터가 성경 다음으로 가장 아꼈던 책, (원제: Loci)
루터는 그의 동료인 멜란히톤의 「신학총론」을 성서의 정경에 포함될 만한 가치가 있다고 공언했다. 본서는 루터파의 종교개혁 원칙을 최초로 체계화한 책이다. 본서보다 후세에 더 큰 영향을 끼친 책은 거의 없다. 그것은 신학교육에서 1세기 이상 표준적 교재였으며, 그 후에도 신학적 토론을 위한 기초 자료였다. 루터는 멜란히톤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신학자라고 칭찬한 바 있다. 본서는 멜란히톤이 40대 초에 초판보다 4배 분량의 새로운 최종판으로 완전한 1555년판을 번역한 것이다.
루터는 멜란히톤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신학자라고 칭찬했다. 또한 그의 「탁상담화 」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신학총론」만큼 신학의 전 분야를 그렇게 충분히 다루는 책을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성경을 제외하고, 더 나은 책은 없다."
멜란히톤은 「신학총론」을 1521년(초판) 처음 라틴어로 출판했으며, 슈팔라틴에 의해 독일어로 번역되었다. 그리고 수정 증보되어 1535년 제2판이 라틴어로 출판되어, 유스투스 요나스에 의해 독일어로 번역되었다. 멜란히톤은 그의 40대 초기에 완전히 새로 쓰기로 하고, 초판보다 4배에 달하는 제3판을 1543-1544년에 라틴어로 출판하였다. 그리고 멜란히톤 자신이 이 최종판(제3판)을 독일어로 번역 출판하였다(1555년). 그리고 1560년 그가 죽은 후 1555년 판은 계속 살아 남았다. 본 역서는 그의 1555년판을 번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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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역자 소개
필립 멜란히톤 (Philip Melanchthon, 1497-1560)
독일의 종교개혁자이며 인문주의자, 루터의 동료로서 그의 견해를 옹호했으며,「신학총론」,「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서」를 썼다. 여러 대학을 설립, 개혁함으로써 독일 교육제도 전체를 실질적으로 재편성했다.
이승구 역자
기독교 교의학(조직신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이로서, 총신대학에서 기독교 교육학을 전공하였고(B. A.)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윤리학과 가치교육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M. Ed.), 합동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M. Div.). 영국에 유학하여 St. Andrews 대학교에서 연구(research)에 의한 신학석사(M. Phil. in Theology) 학위와 박사학위(Ph. D.)를 취득하였고, 그 후 미국 Yale대학교 신학부에서 연구원(Research Fellow)으로 있다가 귀국하여 현재 국제신학대학원의 조직신학 교수로 섬기고 있다.
저서로는 「개혁신학에의 한 탐구」「교회란 무엇인가?」「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강해 1」「개혁신학 탐구」등이 있으며, 역서로 「개혁주의 신론」 「복음주의 사회윤리」「신학 서론」「기독교 세계관」,「다원주의 논쟁」외에 많은 저술과 편집서가 있다.
내 용
본문 77-81쪽 '제1장 하나님에 대하여'중에서...
제1장 하나님에 대하여
하나님을 간절하게 부르기 위해서는 자신이 아뢰고자 하는 것, 하나님이 누구 신가, 그가 어떻게 알려지시는가, 어디서 어떻게 그가 자신을 게시하셨는가, 그리고 그가 우리의 호소와 부르짖음을 들으시는가, 또 왜 들으시는가 등을 고찰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우리의 생각은 하나님이 전능(全能)하시며, 지혜로우시고, 의로우신 주님으로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고 그에 대해서 상당히 많이 알면서도, 그가 어디서 찾아질 수 있는지, 그가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이교도의 생각처럼 흔들려서는 안 된다. 이교도들은 그저 습관적으로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그들은 그의 계시, 구속자, 약속들을 전혀 모르는 것이다. 이런 맹목적인 부르짖음에 대해서 주 그리스도께서는 요한복음 4장[22절]에서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이교도들과 터키 사람들의 기도를 피하고 멀리하며, 자신들을 가르쳐서 그들도 하나님이 아닌 것들을 하나님으로 언급하고, 그것에 기도하는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의 율법의 첫째 계명은 "내 앞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는 것이다. 즉, "주 너희 하나님만 섬기고, 그만을 경배하라"는 것이다. 하나님 자신을 분명한 증거로 당신의 백성들에게 계시하신 이 유일하시고 참된 하나님만을 부르고, 그에게 기도하고, 다른 신들을 찾아 생각이 요동하지 않도록 하라는 말이다.
이것이 아주 필수적인 것임을 기억하면서, 특별히 기도가 고려될 때는 이것이 자주 반복될 것이다. 우리는 맨 처음에 이것을 진술하다. 이는 우리의 생각이 이교도들, 터키인들, 믿지 않는 유대인들, 그리고 모든 불경건한 자들의 생각과 같이 정처 없이 떠돌지 않고, 참된 겸손과 진지한 기도 가운데서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그가 어떻게 알려질 수 있고, 어떻게 발견될 수 있는지를, 그리고 우리가 그를 어떻게 부르고, 기원할 수 있는지를 생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사도들은 바로 이런 것들을 염려하고 생각했으니, 그들 중 하나가 말하기를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足)하겠나이다"(요 14:8)고 하였음에서 그것이 나타난다. 이것은 하찮고 시시한 요구가 아니니, 모든 지각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기를 원하며, 어디서 어떻게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지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질문에 대해서 위로하면서 유용한 가르침을 가지고 대답하셨으니, 그는 말씀하시기를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9, 10절].
아! 이 얼마나 놀라운 위로인가? 우리의 생각이 오류 가운데 정처 없이 방황해서는 안 되니, 하나님께서는 우리 앞에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워 주셨기 때문이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일어나셨으며, 그의 말씀을 주시고, 그와 함께 분명한 증거들, 심지어 죽은 자들로부터의 부활도 주신 분이시다.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서 그를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신 이 하나님은 우리의 심령이 바라보고 말해야 할 분이시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어떠하심과 뜻이 그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선포되신 이 하나님을 확고하게 붙들어야만 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우리의 심령은 참되신 하나님께 말하며, 하나님이 아닌 어떤 것에게 기도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 말씀을 깊이 생각해 보도록 하자: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요 14:6,9).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하나님을 찾아야 하고, 우리의 마음과 생각은 그에게 연관되어 있으므로, 우리가 참 하나님을 그의 아들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신 분으로 여길 때 우리는 참 하나님을 찾고, 그에게 말하게 된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렇게 계시하셨으므로, 우리도 그를 그렇게 여겨야만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불러 아뢸 때 그리스도의 세례를 생각하는 것이 아주 적절하다. 그리스도께서 세례 받으실 때 삼위(the three persons)가 분명히 구별되어 계시되었다. 즉, 성부께서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마 3:17)고 선언하시고, 성자는 요단 강에 서시어 모든 이들이 보는 중에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은 그 위에 임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Wesen]와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과 계시를 성찰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때문에, 후에 더 잘 설명될 바와 같이, 성자 때문에 그의 말씀을 들었다고 인정하고 믿어야 한다.
이제 이 문제를 분명히 하였으니, 다른 문제를 더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렇게 알려지셨으며, 아담이나 아벨, 아브라함, 그리고 모세와 같이 오래 전에 살던 이들은 어떻게 하나님을 알았는가?"하고 물을 수 있다.
이에 대한 대답은 분명하고 확실하다. 세례 요한이나 베드로, 그리고 바울이 하나님을 알고, 그에게 아뢰었던 것과 같이 옛 성도들도 하나님을 알았고, 그에게 아뢰었던 것이다. 아담과 하와를 자신의 은총에로 다시 받아들이셨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구주에 대한 자신의 은혜스러운 약속을 계시하셨기 때문이다. 그는 그들에게 그들이 그 심중에 느꼈던 죽음으로부터 구원되었다는 분명한 증언을 주셨다. 그리고 그 옛 성도들은 후에 그들이 드린 희생 제물들이 하늘로서 내려온 불에 의해 태워지는 것을 보기도 하였다. 그들에게 이 약속을 주신 이 참 하나님을 그들은 하나님으로 알았고, 그들에게 선언되어지고, 그들과 말씀하시고, 후에 성육신하신 구속자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아뢰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은 의미 심장한 말씀을 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요 8:56).
후에 이 한 분 유일한 참되신 하나님께서 첫 계명 가운데서 크고 불같은 표적을 세우셔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너를 애굽으로부터 이끌어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출 20:2)고 하셨다. 이 분명한 표적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자신과 상상적인 다른 모든 신들을 분명히 구분하셨다. 우리는 이 모든 계시들은, 선지자들이 잘 이해하고 선언한 바와 같이, 구주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의 확언으로 일어났음을 알아야만 한다.
이제까지 말한 것으로부터 우리는 아담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서는 언제나 참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이처럼 주장되어져 왔고, 약속된 구주를 포함하고 있었다고 이해해야만 한다. 가인과 다른 불경건한 사람들이 그 약속을 비웃고, 그것을 잊자마자, 그들은 더 이상 이 참 하나님을 부르지 않았으니, 그들이 하나님이라고 부르던 것은 그들 자신의 잘못된 생각의 투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없이 사람들이 더 어두워지고 약해졌어도, 그들은 여전히 계속해서 하나님을 무마시키고, 건강, 승리, 땅의 열매, 그리고 다른 축복들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다른 거룩한 일을 하기를 원했다. 이 어두움 가운데서 그들은 주피터(Jupiter), 전쟁의 신 마르스(Mars), 미의 신 비너스(Venus), 주노(Juno), 바쿠스(Bacchus)와 같은 새로운 신들과 그들에게 대한 제사를 만들어 내었고, 악마들은 이 어두운 백성을 잘못된 환상 가운데로 이끌고 나가서 이들을 신격화시키고, 참 하나님을 모독하도록 했던 것이다.
이 무시무시한 예들이 생각되어져야 하는 것은, 우리가 어디서 어떻게 하나님을 찾고, 그에게 기도를 드릴 수 있는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니, 이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21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그의 아들과 그 복음에 대한 지식에서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이에 저항하여 어떤 이들은 이렇게 묻는다: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합리적 지식은 수학에 대한 지식과 같지 않은가?" 본성상 모든 사람은 지혜와 선하심, 의(義)가 충만하신 영원하신 한 분의 전능자가 계시며, 그가 모든 피조물들을 창조하셨으며 보조하시고, 이 전능하시며, 지혜로우시고, 선하시며, 의로우신 주님이 하나님이라고 불리심을 자연적 이해력(Verstand)으로 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 크세노폰,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키케로 등 많은 현명한 사람들이 그런 전능하시고, 지혜로우시며, 선하고, 의로우신 하나님이 계시며, 그가 우리의 본성에 덕과 악의 구별 능력을 주셨으므로 우리는 이 한 분의 주님께 순종하며 그를 섬겨야만 한다고 말하였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사람들 안에 덕에 대한 지식을 심으셨으니, 이는 우리로 하나님이 계시며, 그가 덕으로 가득찬 지혜로우신 분이시며, 그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와 같이 되기를 원하신다는 말이다. 즉, 그가 우리 안에 형성해 놓으신 빛에 따라서 그에게 순종하도록 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닥칠지라도 교만하게 자신에게만 의존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게 됩니다.
목 차
영역자 서문
한스 엥겔란트의 서론
필립 멜란히톤의 헌정사
필립 멜란히톤의 서문
제1장 하나님에 대하여
제2장 삼위에 대하여
제3장 하나님께서 모든 다른 것들을 창조하셨음에 대하여
제4장 죄의 기원에 대하여
제5장 인간의 능력과 자유 의지에 대하여
제6장 원죄에 대하여
제7장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제8장 계명과 권고의 구별에 대하여
제9장 복음에 대하여
제10장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죄 용서를 받고, 의롭다 함을 얻는가?
제11장 "믿음"이라는 말에 대하여
제12장 "은혜"라는 말에 대하여
제13장 "칭의"라는 말과 "칭의 받음"이란 말에 대하여
제14장 선행에 대하여
제15장 영원한 예정과 유기에 대하여
제16장 구약과 신약의 차이에 대하여
제17장 기독교인의 자유에 대하여
제18장 문자와 영에 대하여
제19장 성례에 대하여
제20장 세례에 대하여
제21장 유아 세례에 대하여
제22장 주의 만찬에 대하여
제23장 의식들, 성례들, 그리고 희생 제사들의 구별
제24장 고해와 사죄에 대하여
제25장 성령을 훼방하는 죄에 대하여
제26장 죄 고백에 대하여
제27장 만족에 대하여
제28장 교회의 권세, 또는 열쇠의 권한에 대하여
제29장 교회에 대하여
제30장 그리스도의 왕국에 대하여
제31장 죽은 자들의 부활에 대하여
제32장 환난과 십자가를 짊에 대하여
제33장 기도에 대하여
제34장 교회 안에 있는 인간들의 규례에 대하여
제35장 '실족케하는'범과에 대하여
제36장 세속 권위에 대하여
역자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