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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상적 배경, 특징. 범위. 강점과 약점 등에 대해서 매우 전문가적인 소개와 비판을 제시해 준다. 수많은 미주와 인용문은 그의 학자적인 책임감과 이 책의 학술적인 깊이를 증명해 준다. 그러나 철학서이면서도 철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도 능히 읽을 수 있도록 평이하게 썼고, 이미 한국에 들어와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증거들을 제시함으로써 독자의 구체적인 이해를 돕는다.
저자 / 역자 소개
신국원
신국원은 총신대 신학과,웨스트민스터 신학교와 화란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와 캐나다 토론토의 기독교학문
연구소에서 수학하였고,미국 앤아버 한인성서교회를 담임한 바 있다. 현재 총신대 신학과 철학 담당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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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포스트 모던의 상상력
▷텔레비전
텔레비전이야말로 가장 포스트모던적인 매체다. 이미지가 사실을 대치하는 시뮬라시옹(모사) 문화의 특성을 가장 잘 반영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중요한 사건이라도 텔레비전에 나와야 진자 뉴스라는 말은 이를 입증한다. 반대로 하찮은 일이 테렐비전 때문에 중요해지기도 한다. 부인과 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고소된 미식축구 선수 O.J. 심슨의 경우가 좋은 예다. 그가 고속도로에서 경찰에 쫓기는 장면은 전세계에 생중계되었다. 그의 이야기는 그 후에도 한동안 뉴스의 초점이었다. 그러나 사건 자체로 볼 때는 그만큼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이런 일은 우연이 아니라 텔레지번의 본질과 관련된 불가피한 일이다. 즉 비이스의 지적처럼 텔레비전은 "이성을 감성적 만족으로 대체하고, 의미를 희생시켜 가면서 흥미를 만족시키려는" 포스트 모던적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프로그램이 영상 중심으로 구성되어 말초 신경을 자극한다. 흔히 토크쇼나 대중적 프로그램에서 도덕적 딜레마나 사회 문제 같은 심각한 이슈들이 오락 비슷하게 되어 버리는 것도 바로 흥미 위주의 자세 때문이다. "텔레비전에서 삶은 오락으로 탈바꿈한다."
(p.152-153)
목 차
추천사
서문
서론:모던과 포스트모던 사이에서
제1부 포스트모던의 뿌리
위기 의식의 발달
붕괴의 징후
제2부 포스트모던의 모습
포스트모던의 이미지
포스트모던의 상상력
제3부 포스트모던 논의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모던적 대화
결론:포스트모던의 위기와 기회 사이에서
주
인명 및 주제 색인
참고문헌
참 고
- 독자 서평 1 : 專門과 容易
저술가의 과제는 학적으로 엄밀함을 인정받을 만큼 전문적이면서도, 일반 독자가 읽어서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쉬움(용이함)을 동시에 제공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쉽지가 않다는 데 있다. 혹자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좇다가 오히려 둘 다를 놓칠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이런 종류의 글쓰기를 반대하기도 한다. 실제로 이러한 글쓰기가 무척이나 어렵기 때문에 이는 과제인 동시에(시간적으로 미래인), 딜레마이기도 하다(시간적으로 현재인). 그러나 궁극적으로 모든 책은 읽혀지지 위해 존재한다. 학문적 엄밀함과 전문성을 상하게 하지 않는 수준에서 대중적 글쓰기가 가능하도록 노력하는 것은 마땅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신국원 교수의 글은 그 두 마리 토끼의 양 다리를 다 잡는 성과를 이루어낸 작품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의 책에는 대중의 상식선에선 온전한 이해가 불가능한 얼마간의 난해한 진술들이 있다. 그러나 철학이라는 주제 자체가 가지는 고도의 추상성을 생각한다면, 이 책에서 사용된 저자의 철학 언어는 오히려 대중적 언어다. 전문가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1차 자료보다는 2차 자료를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고 인용한 것이 흠으로 지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범위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세부적인 논의라기보다는 오히려 그에 대한 입문서 성격이 강하다. 그렇다면 이 책이 가진 백과사전적인 특징들을 통해서 독자는 현재까지 진행된 포스트모더니즘 연구 목록의 압축 파일을 제공받는 행운을 누린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사실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할 수 있는 기회조차도 제공받지 못하고 지나온 사이에 우리 사회와 문화는 거의 전적으로 포스트모던의 사회가 되어 버렸다. 저자가 곳곳에서 반복해서 말하듯이, 이것은 이미 일종의 "현상(phenomenon)"이다. 일시적으로 나타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이미 우리 일상을 지배하는 요소가 되었다. 단지 철학사조에서의 일시적 변천이 아니라, 우리의 문화와 예술과 사회를 지배하는 시대정신이 되어 있다. 일반대중의 삶의 전반에 걸쳐서 포스트모던적 현상은 이미 주도권을 잡았다. 이성을 대체하는 감성, 논리를 대체하는 느낌, 절대를 대신하는 상대, 진리를 대신하는 다원성, 규범을 거부하는 자율, 공동체를 대신하는 개인, 질서를 대신하는 혼돈..... 우리는 어느새 이러한 변화들에 익숙해 있다. 그 거북했던 공기들이 이젠 고향처럼 편하기까지 하다. 교회 역시 사회 안에 존재하고 있으므로 이 전 사회적인 현상은 교회에게도 일상의 옷이 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던화된 사회는 교회에게 기회일 수도 있고, 위기일 수도 있다. 어쨌든 교회는 세상과 함께 존재하며, 두 다리 중 한 다리를 세상에 디디고 산다. 교회는 존재한 모든 역사 속에서 세상의 흐름에 대응하고, 반응하며 대안을 제시하며 성장하고 자라왔다. 종말이 도래하기 전까지 이것은 교회의 존재 방식이며, 이는 또한 필연이다. 이 책은 이 필연의 첫 단계를 위해 저술되었다. "첫 출발은 이 세대를 아는 것이다. 이것이 이 책을 쓴 이유다"(p. 261).
나에게 그러했듯이, 이 책을 읽는 다른 모든 독자에게도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 판단하는 것과 반응하는 것 모두에서 저자의 노력이 성과를 기대해 본다.